1. 국제주의 양식: 현실화되는 현대건축 (International Style, 1920~1950)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은 마침내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혁명적 건축양식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말은 1932년 헨리 러셀 히치곡과 필립 존슨이 <국제주의 양식: 1922년 이후의 건축>에서 처음 사용하였으며, 그들의 논평이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건축 전시회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을 반영한 간소하고, 기능적이며, 장식이 없는 국제주의 양식은 지역적 한계를 넘어 당대의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었고 20세기 중엽까지 세계 건축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호사스러운 장식으로 뒤덮었던 건물의 표면은 날렵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는 평평한 표면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으며, 건축의 재료는 석조와 벽돌조에서 유리와 강철,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로 결합된 건축물들로 변모해 갔습니다.
1-1. 국제주의 양식의 유행의 배경
당시의 건축가들은 여러 양식을 절충한 건물에 저항하기 시작하였고 건물의 기능과는 상관이 없는 여러 시대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건물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비실용적인 건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 당시에 새로운 건축기술과 건축 재료들이 개발되었습니다.
2. 국제주의 양식의 특징
2-1. 기능성, 직선적인 형태, 장식을 배제하고 재료의 특성을 반영
기능성, 직선적 형태, 장식 배제, 재료의 특성이 반영된 디자인 등을 특징으로 하며 말끔하고 기능적이며 구조와 재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2. 신소재와 새로운 기술 개발
합성섬유와 플라스틱을 포함한 신소재 재료와 새로운 기술이 접목하여 디자인에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건축은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커튼월 방식의 마천루로 대표되고 이 때문에 초고층의 탁 트인 실내 계획이 요구되었습니다.
2-3. 장식없이 기능성을 살린 실내 디자인
실내디자인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갈한 흰색 마감과 개방형 평면, 넓은 유리창을 사용하였습니다.
2-4. 콘크리트 사용과 조립식 건축방법 개발
그로피우스에 의해 시작된 조립식 건축 방법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모양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였으며 그 덕분에 지역적인 특성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대량 생산된 값싼 철과 유리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재료가 주요 건축자재로서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벽돌과 돌을 쓰는 오랜 석조건축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철강재로 보강된 콘크리트를 쓰고 건물 외부를 유리로 마감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근대 건물에 필요한 기술이 완성되었으며 건축가들은 이러한 기술을 건축에 도입하여 정직하고 경제적이며 실용적인 건물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이 건물들은 새로운 건축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형태를 보였고, 마침내 국제주의 양식은 간결한 표현과 기능 그리고 기술 간의 조화가 정제된 건축 속에서 구현되었습니다.
3. 국제주의 양식의 대표 건축가
이러한 국제주의 양식의 유행에는 재능이 뛰어난 독창적인 건축가들이 있었습니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한 발터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 로에, 네덜란드의 J. J. P. 오우트,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미국의 리처드 노이트라와 필립 존슨 등이 있습니다.
발터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 로에는 건물의 뼈대를 형성하는 강철보 사이에 유리 커튼월을 세운 구조물로 유명합니다.
발터 그로피우스의 주요 작품들로는 1911~1913년 독일 알펠드에 세워진 파구스 공장과 1925~1926년 독일 데사우에 세워진 바우하우스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미스반 데어 로에의 작품으로는 1949~1951년 시카고에 지어진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와 1958년 뉴욕에 세워진 시그램 빌딩 같은 유리와 강철 재료를 사용한 마천루가 가장 유명합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합리주의, 혹은 기능주의 건축 사상의 기수가 되었던 인물로는 주로 파리에서 활동한 르꼬르뷔제를 들 수 있습니다. 기능주의에 입각한 그의 기계 미학은 이 시기의 모든 건축과 실내디자인 및 가구에 일관되게 적용되었고, 1929년 프랑스 교외 포이시에 세워진 단순한 상자 형태의 사부아 주택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전후에는 유기적이고 조각적인 경향이 추가되는데 롱샹 교회를 통해 변화된 그의 작품 성향을 살펴볼 수 있다. 롱샹 교회는 철근 콘크리트, 스터코, 철강 그리고 유리 등의 일반 재료를 사용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고, 두꺼운 벽에 다양한 크기의 작은 창들을 통하여 신비로운 느낌의 채광 효과를 자아내는 실내를 연출하였습니다.
1. 발터 그로피우스 (1883~1969, 독일-미국)
발터 그로피우스는 근대 건축의 4개 거장 중 하나로 바우하우스의 창설자 겸 초대 교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가 직접 설계한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건물은 근대 건축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고전주의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근대적인 재료와 기술에 기초한 새로운 조형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조형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국제 건축'의 개념은 내놓은 사람도 바로 그로피우스였습니다.
국제 건축이란 시간과 자금 절약을 중시하는 공업 사회의 건축에 국경을 초월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개념으로, 나중에 필립 존슨 등에 의해 하나의 양식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퇴직한 후 영국에 망명했다가 1937년 미국으로 가서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재직할 동안 이오 밍 페이와 필립 존슨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교육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국제 양식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건축물 : 바우하우스 건축학교(독일 데시우, 1925~1926), 파구스 구두공장(독일 알펠트, 1911)
2. 미스 반 데 로에 (1886~1969, 독일-미국)
근대 건축의 3대 거장 중 하나인 미스 반 데 로에는 "적을수록 더 좋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등의 명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베렌스에게서 철과 유리 등 새로운 소재의 가능성을 배우게 됩니다.
또 네덜란드의 건축가 헨드릭 베를라허가 벽돌을 다루는 모습에서 소재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배웠으며' 베를린에서 열린 라이트의 전람회에서는 공간이 지닌 유동성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가르침으로 사상을 확립한 그는 독립 후에 다섯 가지 계획안과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등의 걸작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때문에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이어받은 바우하우스를 폐쇄한 후 활동 장소를 미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미국의 발전된 건설 기술을 배경 삼아 새로운 소재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답은 내부공간을 구조로부터 해방하여 다양한 기능을 허용하는 '보편적 공간'의 개념 그리고 작품의 파사드에 드러난 극히 단순한 세부 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그램 빌딩이나 판스워스 하우스야 말로 그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의 명언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건축물 :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스페인 바르셀로나, 1929(1986년에 복원)), 판스워스 하우스(미국 일리노이, 1951), 바이센호프 지들룽 (독일 슈트가르트, 1927), 일리노이 공과대학 크라운 홀(미국 일리노이, 1956), 투겐타트 하우스(체코 브루노, 1930), 시그램 빌딩(미국 맨해튼, 1958), 레이스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미국 일리노이, 1951)
3. 르 코르뷔지에 (1887~1965, 스위스-프랑스)
모더니즘의 대명사가 된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토니 가르니에, 오귀스트 페레, 페터 베렌스 등, 유명한 건축가들 밑에서 경험을 쌓은 르 코르뷔지에는 20대에 '도미노 시스템'을 고안하여 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제창하였습니다.
30대에 확립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모더니즘 건축의 조건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저서 '건축을 향하여'와 함께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전 세계에 퍼뜨렸습니다.
이 시기의 그의 건축물은 '백색 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하나같이 하얗고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사보아 저택은 그 조건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에 그는 나무와 돌을 주로 사용하는 비형식적인 건축 양식인 '브루탈리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경향은 1930년대부터 슬슬 나타나고 있었지만 전쟁 후에 한층 두드러지면서 많은 걸작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국립 서양 미술관도 이 시기의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또 그는 '300만 명을 위한 현대 도시' 등 도시 계획이나 제네바의 '국제 연맹'같은 단지 설계를 다수 제안 하였습니다. 이중 완성된 것은 찬디가르 등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 기법은 세계 각국에 추종자를 양산하였습니다.
대표 건축물 : 사보아 저택(프랑스 푸아시, 1931), 바이센호프 지들룽 (독일 슈투트가르트, 1927), 롱샹성당(프랑스 롱샹, 1955), 라 투레트 수도원(프랑스 리옹, 1957), 유니테 다비타시옹(프랑스 마르세유, 1952), 찬디가르 국회의사당(인도 펀자브, 1952), 카프 마르탱 오두막(프랑스 코트다쥐르, 1952), 방직자 협회 회관(인도 아마다바드, 1956), 작은집(어머니집)(스위스 코스로 베비,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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