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에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으로서 문학, 음악, 회화. 건축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배출되어 유럽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탈리아로부터 바로크 양식이 도입될 당시의 프랑스는 절대왕정체제었고 프랑스의 바로크 양식은 루이 13세 때 도입되어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와 그의 귀족을 위하여 발전하였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의 바로크는 이탈리아의 바로크와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는 종교적 열정을 바탕으로 교회건축을 위주로 전개되는데 반해서 프랑스의 바로크는 절대 권력자에 의해 통치되는 중앙집권적 절대주의 양식으로 웅장한 규모와 풍부함을 특징으로 하며 성관 건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당시 프랑스의 귀족계급은 문화적 식견이 높았으며,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적 건축가인 프랑소와 만사르(1598~1660), 루이스 르 보우(1612~1670) 등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그들을 후원하였습니다. 귀족계급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루이스 르 보우는 1657년 로마의 팔라초 바르베리니 같은 대저택에서 영향을 받아 성관 건축의 공간배치에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소와 만사르는 프랑스 건축이 로마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주요 역할을 하었고 메종 라피트를 비롯한 몇몇 성관을 설계하였습니다.
프랑스 바로크 양식은 루이 14세(1661~1715)가 권좌에 오른 통치 기간 중 유행한 양식으로 고전적 디테일을 사용한 로마 디자인에서 시작되었으나 루이 14세가 재임하던 시기에는 궁중 생활의 호화스러움과 풍요를 나타내며 불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르 그랑 시에슬’이라 불리는 국제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시기에 궁중 생활의 호화스러움과 풍요로움은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약 10,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베르사유는 굴뚝이 300개 이상 되고 창문도 약 2,100개나 되는 방대한 규모입니다. 모든 방은 엄청나게 크고 장식이 화려하며 바닥은 대리석으로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고, 벽은 목재 바탕에 금박 조각으로 장식되거나 밝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또한 천사나 잎사귀 문양의 모티프는 코니스 몰딩, 문, 창문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가구는 규모가 크고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기에 벽 주위에 놓았습니다.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도록 디자인되었으며 기본 형태에 인물상, 소용돌이 곡선, 3차원의 부조가 덧붙여져 가구의 구조를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앙드레 불르(1642~1732)는 1672년 루이 14세로부터 임명된 최고의 가구 제작자였으며 동과 아연 합금에 금박을 입히는 오물루 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몰딩과 장식적인 모티프를 표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가구로는 코모드, 아르무아르와 같은 수납장이 있으며 의식용으로 제작된 왕좌, 신분이 낮은 귀족을 위한 스툴과 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불 마케트리 기법으로 표면을 장식하였으며 사용된 문양은 잎, 추상적인 곡선, 조개, 요정, 스핑크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로코코 양식은 루이 15세가 집권하던 시기(1715~1774)에 부유한 상류 사회의 사교 활동이 중시되면서 바로크 시대와는 다른 특징이 실내디자인과 가구디자인 전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베르사유 궁전 (파리 근교, 1661-~1774)
프랑스 파리 근교 베르사유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 때부터 루이 16세 때인 프랑스 혁명까지 프랑스 왕들의 관저로 쓰였던 유럽 궁전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3세가 사냥하기 위해 세운 작은 오두막을 절대왕정시대의 절대 권력자인 루이 14세가 가장 웅대하고 화려하게 지은 것입니다.
이 궁전은 루이스 르 보, 질르 아르두엥 망사르와 같은 천재적인 건축가들과 조경사인 앙드레 르 노트르, 실내 장식가 샤를 르 브렁, 그리고 2만 명이 넘는 인력이 무려 50년 넘게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습니다.
프랑스 바로크식 정원의 대표적인 실례를 보여주는 베르사유는 대칭형과 기하학적인 형태로 '권력의 기하학'을 장대하게 표현한 것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중앙 건물로 넓은 길이 이어지고 3개의 플과 함께 3개의 날개를 갖춘 대칭형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동쪽의 파리로 통하는 대도로를 중심축으로 하여 방사선상으로 2개의 도로가 배치되었습니다. 건물 뒤쪽으로는 인공 수로와 테라스, 분수들이 화려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원래 2473ha 크기의 공원은 현재 1/3 수준으로 줄어 있습니다. 정원쪽 파사드의 1층은 거친 석재로 되었으며 주요 층은 아치창 사이를 필라스터로 구획했는데 중앙과 양단부에 열주가 약간 돌출되어 악센트를 주며 최상층은 지붕방으로서 꼭대기에는 항아리나 전리품의 형태를 본뜬 돌조각이 난간에 나열되어 바로크적인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베르사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방은 거울의 방'입니다. 대리석과 바로크 장식, 금박가루로 마감한 벽면장식, 장대한 원통형 볼트, 천장에서 길게 늘어져 매달려 있는 17개의 거울에서 발하는 환상적인 광채로 충만한 '거울의 방은 이후 유럽의 호사스리운 방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거울의 방'에 비해 비교적 작은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은 나란히 배치되었습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이 궁전은 5000여 명의 귀족들을 비롯하여 약 십만 명을 수용하였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전례 없이 큰 규모로 세워진 이 궁전과 정원은 그 아름다움과 웅대함으로 유럽 왕실 궁전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앙발리드 성당 (파리, 1680~1691)
앙발리드 성당은 루이 14세 때 프랑스 바로크 건축가 망사르에 의해 1680~1691년에 걸쳐 상이군인병원의 부속 성당으로 세워졌습니다.
앙발리드 성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바로크적인 건물의 하나로 위엄하며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앙의 대형 돔이 시각적으로 건물 전체를 압도하고 정면 입구부분을 앞으로 돌출시켰으며 기둥 사이의 간격을 점차 좁게 하면서 부조의 깊이를 증가시켰습니다.
평면은 그리스 십자형의 중앙집중형 회당형식으로 4개의 채플과 옆으로 확장된 엡스가 덧붙여졌습니다.
실내는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이며 두 개의 드럼 위에 얹혀진 돔은 직정 30m, 바닥으로부터의 높이는 63m이며 열주모양의 버트레스로 지지되고 있습니다. 돔의 하부에는 창들이 배치되어 있어 이 창들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더욱 신비한
실내공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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